개·폐막작
2022년 9월. 20대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후 폭행으로 숨졌다. 그의 죽음을 지켜본 수많은 이란 여성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히잡을 벗어던지며 그를 추모했다.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선 이후 이란 시민들은 민주화를 향한 열망으로 체제에 꾸준히 저항해 왔지만, 이 ‘여성, 생명, 자유’ 운동은 이란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키며 전국 시위로 확산되었다.
2025년 6월. 이란과 미국의 핵 협상이 결렬되고 이란이 무기급 우라늄 농축을 감행하자, 이스라엘은 핵시설 무력화를 명분으로 이란 전역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12일 전쟁’의 충격과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시민들의 불안은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이슬람 혁명 수비대는 시민을 향해 발포를 시작했고 국가 인터넷망을 차단하면서 이란 시민들은 고립된 채 죽어갔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은 1980년 대한민국의 광주였다.
2026년 2월. 이란 정권의 무자비한 자국민 학살을 빌미로 미국의 트럼프와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는 ‘시민 해방’과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또다시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했다.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으나 그의 아들 모즈타바가 그 빈자리를 세습했다. 4만여 명의 시민이 민주화의 염원을 품은 채 스러졌으나, 체제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내부의 억압과 외세에 의한 전쟁이라는 이중고는 이란 시민들을 깊은 좌절에 빠트렸다.
제14회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이러한 이란의 현실과 이들의 이야기를 국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하며 이란 시민과 연대하기로 결정했다. 〈창문의 빛〉, 〈친구처럼, 사슴처럼〉, 〈테헤란에서 나 홀로〉는 억압된 이란 사회를 재현하며 자유를 향한 이란 시민의 의지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낸다. 이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곧 투쟁이자, 삶을 지속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세 편의 영화를 개막작으로 상영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전쟁 중인 이란 감독들과의 소통은 불가능했다. 개막작임에도 상영이 성사되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달여의 기다림 끝에 비로소 이 영화들이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의 기다림은 이란 시민이 감내하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있다.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있다. 두 도시를 잇는 이 길들이 마음으로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제14회 디아스포라영화제의 세 편의 개막작을 통해 이 지구의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이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