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형사인 해준은 중국인 여성 서래를 남편 살해 용의자로 심문한다. 사건의 특성상 사적인 내용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오간다. 사실 그들은 그저 국적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동안 너무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기에 서로에게 완전한 타자로 마주한다. 형사와 용의자라는 공적인 관계에서 오가는 내밀한 대화는 낯선 친밀성을 낳고,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 서로를 유혹하는 속삭임이 된다. 그녀를 감시하며 주변을 맴돌던 해준은 마침내 사랑에 빠진다. 여기에서 사랑은 계급과 계층을 초월한 편견 없는 대화와 응시로부터 기원한다. 그러나 해준은 서래를 무혐의로 풀어주는 실수를 범한 뒤, 여자에 미쳐서 형사로서의 자아는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고 한탄한다. 그런데 원래 사랑이란 자신의 견고한 틀을 무너트리고 깨트리는 것 아닌가. 그리하여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그의 선언은 진심 어린 사랑 고백에 다름없다. 그리고 그때부터 서래의 사랑이 비로소 시작된다. (김경태)​

🔸 2022년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