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시놉시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쟈민은 해녀 일을 배우고 있다. 어느 날, 한국어 교실에서 돌고래를 봤다는 다른 해녀의 말을 듣고 쟈민은 돌고래가 보고 싶어진다. 시어머니 순옥은 쟈민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있다. 오랫동안 해녀 일을 한 순옥은 한글을 배우며 쟈민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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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등반의 방법론을 거칠게 나누면 ‘등정주의’와 ‘등로주의’가 있다. 등정주의는 말 그대로 최고점에 오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래서 등정주의에서는 누가 먼저 오르느냐, 얼마나 많이 오르느냐, 얼마나 빨리 오르느냐가 핵심적인 수행 목표가 된다. 이런 등정주의의 시대에 수많은 산악은 등반가들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더 이상 먼저, 빨리, 많이 오를 필요가 없다. 그러자 생겨난 새로운 개념이 등로주의다. 지금의 등반은 이전에 발굴되지 않은 루트로 등반했느냐, 산소통의 힘을 얼마나 적게 빌리고 갔느냐, 혹은 셰르파(등반에 필요한 보조 인력)를 최소화했느냐 같은 것을 더 중시하는 등로주의가 핵심이다.

조금 낯설지만 이 개념을 영화에 끌고 와보면, 등정주의는 시각적 쇼크나 서사적 충격 같은 정량적 형식이 강화된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등로주의는 어떨까. 같은 서사적 마무리에 도달하는 ‘방법론’을 고민한 정성적 형식의 영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김가영의 〈숨비소리〉는 이런 ‘등로주의’적 관점을 영화에서 실현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숨비소리〉는 인물의 배치도 전형적인 디아스포라 캐릭터(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와 시어머니의 서사다. 그런데 다른 것은 지금부터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한국식 예법을 강요한다거나, 남편과 아내가 서로 다른 의견의 충돌로 인해 갈등을 빚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 서사에서 주인공에게 다가오는 어떤 변곡점의 순간들이 있다. 이 순간들은 여러 형태로 제시되는데, 보편의 방식은 ‘통과의례’의 형태다. 〈숨비소리〉는 이 보편의 성장 서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서사적으로는 보편성의 성질에서 빗나가지 않고 ‘성장 서사’라는 안전한 방식으로 봉합되는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할지라도 그 ‘과정’, 즉 방법론에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인다. 이주 여성 쟈민은 한국에 와서 ‘물질’과 한국어를 배우고, 동시에 시어머니 순옥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다. 순옥이 쟈민을 걱정하는 마음은 충만해 보이므로 이 이야기에는 갈등적 구조가 없다. 이야기를 추동하는 힘은 쟈민이 한국,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집단의 세계(물질하는 어머니들)에 진입하고자 하는 일종의 성장 욕구, 그러니까 통과의례를 통과하고자 하는 내면적 욕구에 있다. 〈숨비소리〉는 자아를 완성하기 위해 끝없이 하강하는 쟈민과, 쟈민을 통해 ‘언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배우는 순옥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섬이 되는 문학적 심상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주제도, 서사도, 인물도 보편성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온전히 자신의 폐활량에 의지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해녀들의 해루질처럼 〈숨비소리〉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향해 새로운 길을 열며 나아간다. (박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