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프로그램 노트

두부를 으깨 물기를 빼고 고기와 갖은 야채를 다져 넣고 마지막으로 달걀을 넣어 손으로 치대 반죽을 한 뒤 하나하나 손으로 굴려 한입 크기로 동그랗게 빚은 다음 부침가루를 묻히고 계란물을 입혀 기름을 달군 팬에 골고루 익게 지져내는 (헉헉) 동그랑땡은 손이 참 많이 가는 음식이다. 이러니 명절이나 제사처럼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해 먹기 어려운 음식이기도 하다. 이런 어려운 음식을 손수 만들어 가져간다는 건 그만큼 동그랑땡을 만들고 전하는 손길이 간절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버지의 제사를 맞아 어머니가 있는 본가에 간 도진 옆에는 연인 가호가 함께이다. 가호의 손에는 자신이 직접 만든 동그랑땡이 들려 있다. 어머니는 정성스러운 가호의 동그랑땡이 반갑지 않다. 그렇게 가호의 동그랑땡은 차갑게 식어간다.

사실 아버지 제사는 핑계다. 도진과 가호는 어머니에게 결혼을 허락받으러 왔다. 그냥 커밍아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결혼이라니. 용기가 나지 않아 자꾸 뒷걸음질 치는 도진을 보며 가호는 답답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가호는 2019년 이후 동성혼이 합법화된 대만에서 왔다. 자신의 부모에게는 도진의 부모가 허락한다는 전제하에 이미 결혼 허락도 받아두었다.

그러나 이곳은 대한민국. 도진의 10대 시절부터 아들의 성 정체성을 알아챘지만 지금까지 모른 체해 왔던 어머니는 가호가 손수 준비한 동그랑땡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가호가 아들의 연인임을 알면서도 아주 친한 동성 친구일 뿐이라고 못 박고 할 말이 있어 안절부절못하는 아들을 피한다. 마치 모르면 없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사랑하는 아들의 행복을 바라기 때문에 아들 커플을 외면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그런 어머니에게 자신의 사랑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아들의 마음.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마음이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아주 수고스럽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겠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번거롭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동그랑땡이 식어도 맛이 있는 것처럼, 두 마음이 만나는 행복은 매우 맛이 있을 게 틀림없으니.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