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2025
13회 영화제(2025)
프로그램 노트
인간은 뿌리를 잊을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 역량이 내 편이기 위해 먼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할 뿐이다. 인간은 경계를 넘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걸 넘기 전에 그 경계가 어디에 있고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아야 할 뿐이다. 한 사람이 자기 삶의 부작위를 견디려면 자기 삶에 거행된 작위부터 먼저 알아야 한다. 인간이 뿌리로부터 경계로부터 끝내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걸 스스로 알 권리를 체계적으로 빼앗기 때문에 강제 입양과 보호출산제는 문제다. 그 권리를 빼앗는 행위는 거꾸로 한 인간을 뿌리와 경계로부터 좀처럼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족계획과 인구 절벽은 지극히 일관된 귀결의 사건이다. 잘 키울 자신이 없는 자식을 더 낳지 않겠다는 것과, 잘 키울 자신이 없는 자식을 애초에 낳지 않겠다는 것은, 부사 하나만 다를 뿐 완전히 동일한 문장이다. 하물며 우생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긴 출산에 대해 이 나라가 해온 일들을 살펴보면, 이 나라의 인구는 거듭 세 번을 멸절해도 모자랄 판국이다. 한국은 사람들더러 아이를 더 낳으라고 할 염치가 없는 나라고, 세상에는 염치를 모르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호주제와 남아 선호 사상은 그 염치없음의 첫 줄에 들 역사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넷째 딸이라는 이유로 형식적인 동의 절차만 거친 채 해외로 입양되었고, 입양 보낸 것을 내내 후회한 원가족은 입양의 대가로 복지회 측에 금전이 지급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아들이면 키우고 딸이면 입양 보낸다’는 방침은, 사실상 남성 가족원만 호주가 되어 친권과 재산권을 휘두를 수 있던 당대 사회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부장제와 제도적 이성애가 부여한 가족 안의 불의는, 영화 속 부부간 금슬이 그렇게도 좋은 화목한 딸 부잣집에서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성소수자가 원가족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원가족과 멀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의 죄 없는 이성애와 세상이 부르짖는 제도적 이성애로부터 자기 스스로를 분리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찾는 연애와 가족의 전범이 저기 없다면 마땅히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건 커밍아웃을 했을 때 내 가족이 나를 환대해 줄지, 혹은 폭행하고 정신병원에 처넣을지의 여부 이전의 문제다. 그것은 원가족과 양부모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성소수자로서 겪어야 했을 생애사의 과정이다. 부모가 어떤 형태로든 자기 삶을 좌우할 수 없을 상황이 되었을 때, 성소수자 스스로 더 편하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경향은 우연이 아니다.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은 중요하다. 영화 속 주인공은 양부모가 돌아가신 후 쉼터와 개신교 공동체, 그다음에는 퀴어 커뮤니티와 한인 입양인 커뮤니티에서 그것을 느꼈다. 사람의 마음은 집 같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추상같이 나눈다. 그렇게 남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구성해 낸 뿌리 위에, 사람은 비로소 스스로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원가족과 처음 만난 뒤 14년의 세월이 흘러 그들과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상봉하기까지는 그러한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원가족은 거주지 주소와 혹시라도 연락이 올 전화기를 바꾸지 않았다. 이 영화는 그렇게 14년간 그 자리에서 변하지 않은 마음과, 14년간 자기 자리를 힘껏 찾아 나선 마음이 서로를 알아본 드문 절경이다. (김대현)
문조타MUN Jo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