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2025
13회 영화제(2025)
프로그램 노트
어떤 전제는 너무 새삼스러워서, 그걸 다시 생각해 볼 필요를 못 느끼곤 한다. 이를테면, ‘홍상수의 영화는 흥미로운 영화’다. 언제나 홍상수의 영화를 흥미롭게 보는 시네필에게 홍상수의 영화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어떤 것의 변주를 즐기고, 그 변주의 리듬감에 몸을 맡기다 보면 어느새 끝나 있는 황홀한 영화들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보고 싶다. 홍상수의 영화에 관심이 ‘없는’ 시네필이라면 홍상수의 영화를 어떻게 생각할까. ‘홍상수의 영화에 관심이 없는 시네필이란 존재할 수 없다’ 같은 말로 논지를 틀고 싶지는 않다. 영화를 사랑하는 방식에 어떤 정해진 규약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누군가에게 홍상수의 영화는 그저 ‘똑같은 걸 줄기차게 찍어대는’ 영화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이에게 홍상수의 이 영화와 저 영화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를 추적하는 작업은 흥미로운 지적 유희이자 비평적 감각을 일깨우는 놀라운 체험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변별하기 어려운’ 영화들일 수도 있다. 그런 판단 속에서 쉴 틈 없이 채워지는 홍상수의 필모그래피는 또 다른 심리적 장벽이 되기도 한다.
〈여행자의 필요〉는 그런 홍상수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유달리 튀는 영화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홍상수 간의 어떤 심리적 장벽으로 인한 ‘단절’을 느낀 사람이라면, 조심스럽게 홍상수의 세계와 다시 접촉해 보는 훌륭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영화다. 시놉시스에서 보이듯, ‘불란서’에서 한국으로 온 이리스는 ‘영어’로 ‘한국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친다. 이리스가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방법은 전통적인 언어의 교수법. 단어를 외우게 하고 짧은 문장(‘우체국은 어디입니까?’)을 만들게 하는 방식이 아니다. 수강생의 안에서 끄집어낸 어떤 ‘감정’들을 입을 통해 발화하고, 그것을 이리스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뒤 반복하여 수강생에게 읽게 한다. 그럼으로써 언어 그 자체가 주는 수치화할 수 없는 ‘에너지’를 체험하도록 유도한다. 유랑하는 자인 이리스는 정주해 있는 한국인들에게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자신의 모국어(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정주해 있는 한국인들은 ‘영어’를 경유해 ‘프랑스어’를 배운다. 〈여행자의 필요〉는 ‘언어’들이 부유하면서 발생시키는 파열과, 그 파열로 인해 발생한 불씨를 탐구한다. 어쩌면 홍상수는 〈여행자의 필요〉 속 부유하는 존재 이리스를 경유해, 화면 바깥의 사람들과 언어의 불꽃을 같이 태워보자고 손짓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 손짓은 꽤나 친절하다. 그러므로 홍상수의 세계와 어떤 ‘단절’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그럼으로써 홍상수와 어떤 심리적 거리감을 느꼈다면 다시 홍상수의 세계로 걸어가 볼 용기를 내어도 괜찮을 것이다. 더구나 디아스포라영화제는 그렇게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갈 용기를 응원하는 곳이다. (박지한)
홍상수HONG Sang-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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