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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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2021] DIALibrary-ON LINE : 5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1 DIAlibrary-ON LINE]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 이종찬 독립연구기획자​가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다섯 번째 추천도서는 

 

 

『가족의 나라(양영희, 씨네21북스, 2013)

입니다.

 

이종찬 독립연구기획자의 다섯 번째 편지,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가족의 나라(양영희, 씨네21북스, 2013)

 

최근 어머니는 조금씩이나마 자신의 젊은 시절 추억을 솔직히 들려주었다.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문장 하나하나가 내가 지금껏 봤던 어떤 영화 장면보다 드라마틱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머금은 채 어머니는 언제나 마지막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얘기, 밖에서 하면 안 된다.”

 

1964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재일교포’) 2세 양영희 감독이 일본에서 2012년 출간한 자전적 이야기 『가족의 나라』 에필로그에서 쓴 대목입니다. ‘밖에서 하면 안 되는 이런 얘기’가 무엇인지 당시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상의 언급이 책에는 쓰여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것을, 최근 개막한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 양 감독의 신작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를 보고 나서야 그것이 무슨 이야기였을지 저는 짐작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난민의 딸’이었다는 자각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양영희 감독은 9월 14일 DMZ 영화제의 토크 프로그램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영화 작업을 통해 저 자신이 난민의 딸이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양 감독의 전작 <디어 평양>(2006)이 자신의 아버지 양공선, <굿바이 평양>(2009)이 평양에 살고 있는 조카 선화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신작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어머니 강정희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20년이 넘도록 매진해온 가족 다큐 작업에 마침내 하나의 마침표를 찍게 된 것 같다며 감독은 얼마간 감회의 찬 표정으로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흡사 기나긴 터널을 이제서야 막 통과해온 듯한 자의 말투처럼 들렸습니다.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 씨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0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열다섯 살이 되던 1945년, 미군의 공습으로 오사카 일대가 화염에 휩싸이자 어머니는 조부모의 고향인 제주도로 피난을 가게 됩니다. 하지만 1948년, 전쟁의 참화를 피해 도망쳐 온 제주에서 이번에는 4.3 사건이 발발하고 맙니다. 그 과정에서 결혼을 약속했던 약혼자가 빨치산 활동 와중에 사망, 생명의 위협을 느낀 어머니는 운명의 장난처럼 자신이 떠나왔던 오사카로 또 한 번 피난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얘기, 밖에서 하면 안 된다.” 

 

제주 4.3 사건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거대하고 절대적이었던지 한국, 특히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오랫동안 회피하려 하던 어머니의 입에서 4.3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그녀가 알츠하이머(‘치매’)를 앓기 시작하던 즈음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밖에서 할 수 없었던 시대를 지나 이제 겨우 4.3을 입밖에 내어도 괜찮겠다 싶어진 바로 그때 하필이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과 마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져 가는 어머니의 기억(이자 한국 현대사의 기억)을 최대한 망각의 심연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해 노력하던 양영희 감독은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상처와 뒤늦게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이 ‘난민의 딸’이라는 자각과 마주하게 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후반부에서 결국 양영희 감독은 속 깊은 울음을 토해냅니다. 어머니가 왜 오랫동안 남한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입에 올리기 싫어했는지, 왜 남한 대신 북한의 정치 체제를 옹호하고 열정적으로 투신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짐을 짊어지고 산다. 누구의 짐이 가장 무거운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그 내용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짊어진 짐 속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인생뿐 아니라 그와 그녀가 살아온 사회와 시대가 보이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현실이 선명히 부각되기 때문이다. 가방 깊숙이 감추어둔, 버리고 싶은 ‘쓰레기’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싶다. 냄새가 나거나 귀찮기도 하겠지만, 그 현실을 똑똑히 보고 싶다.”

 

오래전 <디어 평양>을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가 마치 마법과도 같이 느껴지는 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시종일관 아버지를 비추고 있는 카메라의 존재가 그저 단순히 하나의 매개체에 그치지 않아 보였습니다. 제주 출신임에도 평양을 자신의 조국으로 여기고 일평생 열정적인 정치 활동을 전개해 온 아버지와 그녀 사이에 갈등과 긴장의 시기가 있었음을 감독은 솔직히 고백하고 있었는데요. 그런 아슬아슬한 모녀 사이에 어떤 내밀한 대화의 공기가 포착되는 순간이 <디어 평양>에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처음으로 양영희 감독 다큐 속 카메라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 둘의 대화가 가능해지는 건 역설적이게도 저 카메라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와 딸 사이에 쉽사리 소통되지 못했던 관계의 얽힘 같은 것들이 어떻게 제3의 존재라 할 카메라가 끼어든 덕분에 가능해지는 것이란 말인가. 

 

양영희 감독의 카메라는 아버지와 자신(<디어 평양>), 조카와 자신(<굿바이 평양>), 그리고 어머니와 자신(<수프와 이데올로기>) 사이에 발생한 어떤 결정적인 순간들의 공기를 기적과도 같이 포착해내어 관객인 우리에게 비춰주고 있습니다. 훌륭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덕목은 쉽게 지치지 않고서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일지, 아니면 언제 어느 때 카메라의 온/오프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감지해내는 감수성일지 궁금해집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어서 빨리 정식 개봉을 통해 많은 한국의 관객들과 만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종찬

독립연구기획자. 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디아스포라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서울시 자치구 중 하나인 성북에 거주하며 그곳의 예술인들과 따로 또 같이 활동하고 있다. 학문적 글쓰기와 신변잡기식 수필, 그 중간 정도의 글쓰기 양식이라 할 ‘비평적 에세이’의 문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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