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DIAFF MAGAZINE

[도서소개2021] DIALibrary-ON LINE : 6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1 DIAlibrary-ON LINE]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 이종찬 독립연구기획자​가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마지막 추천도서는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이랑, 창비, 2020)

입니다.

 

이종찬 독립연구기획자의 마지막 편지,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이랑, 창비, 2020) 

 

21세기의 민중예술가 이랑

 

이랑의 글을 접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이랑은 뮤지션으로 처음 자신의 존재를 대중에게 알렸지만 다수의 글을 써낸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첫 앨범을 발매하고 뮤지션으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때가 2012년이었건만 사실 저는 이제껏 이랑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우연히 3집 정규 음반 <늑대가 나타났다>(2021)에 수록된 곡 환란의 세대를 듣게 된 계기로 호기심이 발동해 그가 이제껏 발표해 온 음악들을 말 그대로 역주행하는 시간들을 가지게 되었지요.

 

환란의 세대라는 곡에서 이랑은 흡사 마블 영화에 등장하는 안티히어로 타노스의 행위를 연상시킵니다. 고작 손가락 튕김 하나로 지구의 인구 절반을 가차 없이 날려버렸던 그의 전지전능한 능력처럼 이랑은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그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선수 쳐버리자며 거침없이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이랑은 자신의 자살 충동에 대해 거리낌 없이 표현한 뒤 그 근거로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숨 가쁘게 나열했습니다.

 

일도 안 해도 되고 / 울지 않아도 되고 / 헤어지지 않아도 되고 / 만나지 않아도 되고 / 편지도 안 써도 되고 / 메일도 안 보내도 되고 / 메일도 안 읽어도 되고 / 목도 안 메도 되고 / 불에 안 타도 고 / 물에 안 빠져도 되고 / 손목도 안 그어도 되고 / 약도 한꺼번에 엄청 많이 안 먹어도 되고 /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일 테니까

 

그런데 이 곡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데에는 동시에 다 죽어버리자”,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이라는 저 노랫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전제조건입니다. 자살의 전제조건. “동시에 다그리고 한꺼번에 싹 다 가버리는 멸망이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한날한시에 모두가 공평하게 죽어버리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곡은 자살을 조장하는 곡이 아니라, 그러기는커녕 역설적이게도 더할 나위 없이 큰 러브 송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부정의 부정이 강한 긍정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곡은 정규 앨범에 실리기 전 2020년 싱글로 맨 처음 발표되었습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2020년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쇼크에 빠져들었던 해입니다. 그래서일까. 저에게 이 환란의 세대라는 곡명은 환란의 시대와 오버랩되어 읽히기도 합니다. 저는 이랑의 이 노래가 대중가요의 일반적인 노랫말 문법을 따르지 않아 기뻤습니다. 무엇보다 재난의 시대에 재난의 풍경을 응시하는 노래가 등장한 것인가 싶어 반가웠지요. 어쩌면 공식적 발표 연도와 실제 창작의 시기가 실제로는 다를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랑 스스로 세련된 민중가요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곡 늑대가 나타났다’(2021) 또한 저는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곡은 다음과 같은 우화적 분위기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이른 아침 가난한 여인이 굶어 죽은 자식의 시체를 안고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를 울며 지나간다.

 

곡이 진행되는 동안 늑대가 나타났다는 샤우팅이 군데군데서 터져 나옵니다. 겉보기에는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들리지만, 그 이면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어떤 절박함과 아슬아슬함이 느껴집니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이랑과 동료들의 외침은 어쩌면 끝내 사건이 되지 못한 저 무수한 사건들을 어떻게든 기어이 우리 공동의 사건으로, 공동의 의제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구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랑 음악에 대한 저의 뒤늦은 호기심은 어느덧 그가 쓴 글로도 이어졌습니다. 그가 쓴 인상적인 노랫말들이 저로 하여금 그가 쓴 문장들까지 신뢰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이랑은 자신의 글 여러 곳에서 자신이 미국 작가 커트 보니거트의 애독자임을 밝히고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단적으로 그의 데뷔 앨범 <너의 리듬>(2012)에 수록된 곡 욘욘슨은 커트 보니거트가 쓴 소설 5도살장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기도 합니다. 이랑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곡들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요.

 

커트 보니거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버려진 도살장에 수용되었다가 미국과 영국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 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뒤 그는 자신의 전쟁 경험에 대한 책을 쓰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나 욘욘슨이라는 구전 민요의 노랫말에서처럼 자신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드레스덴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라고 오랜 시간 동안 앵무새처럼 대답하지만 정작 20년이 넘도록 그 전쟁에 대해 제대로 된 문장을 써내지 못합니다. 막혔던 글 숨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트이게 되는데요. 어느 날 그는 함께 전쟁에 참전했던 친구의 아내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당신들은 그때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했다구요!” 이때의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그는 5도살장이라는 책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 책에는 소년 십자군, 죽음과 억지로 춘 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소년 십자군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커트 보니거트를 향한 이랑의 무한 애정은 그의 에세이집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속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나는 커트 보니것이 나라 없는 사람에 썼던 이 문장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앞으로도 계속 기억하려고 한다. “어떻게든 현명한 사람이 되어 달라. 그래서 우리의 생명과 당신의 생명을 구하라.”

 

정말 그렇습니다. 이랑의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묘한 울림과 떨림의 순간과 마주하게 되는 때가 있으니 말이지요. 그가 우리의 생명과 당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떻게든필사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환란의 세대를 처음 들었을 때 제가 느닷없이 느꼈던 감정의 벅차오름은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각각의 시대는 저마다의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예술 생산물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랑은 동시대의 뮤지션이자 동시대의 작가입니다.

 

 

 

 

 

 

이종찬

독립연구기획자. 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디아스포라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서울시 자치구 중 하나인 성북에 거주하며 그곳의 예술인들과 따로 또 같이 활동하고 있다. 학문적 글쓰기와 신변잡기식 수필, 그 중간 정도의 글쓰기 양식이라 할 ‘비평적 에세이’의 문체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CopyRight Since 2016-2021 WWW.DIAFF.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