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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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라이브러리] 난민을 위한 따뜻한 공동체적 유대를 향한 헌사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지난 10년간 다루었던 여러 디아스포라 이슈를 전체적으로 되짚어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변화된 의미를 영화와 함께 살펴보고자 기획한 코너!

 

어려워 보일 수 있는 키워드를 친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 영화로서 다시 한 번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그때 그 시절의 디아스포라 이슈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무비라이브러리를 통해 앞으로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무비라이브러리

Movie Library

 

Keyword 5 : 제주―예멘―디아스포라

영화 <림보(Limbo​)>, (2020)


다섯 번째로 만나는 키워드는 '제주―예멘―디아스포라'입니다.

2019년 제7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포커스 주제가 현재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영화를 통해 함께 보시죠.  

 

 

 

 

keyword 5: 제주―예멘―디아스포라

영화 <림보 (Limbo)>, (2020): 난민을 위한 따뜻한 공동체적 유대를 향한 헌사

 

벤 샤록 감독의 <림보>는 스코틀랜드의 섬마을에 위치한 난민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에는 중동과 아프리카 각국에서 온 난민들이 망명 신청 결과를 기약 없이 기다리며 무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중에는 시리아 출신의 ‘오마르’가 있다. 홀로 스코틀랜드에 왔고 부모는 터키에서 그의 망명이 받아들여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형은 시리아에 남아 내전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전통악기인 ‘우드’ 연주자로 자국에서는 촉망받는 음악가로 활동했지만 왜인지 더는 연주를 하지 않는다. 오마르는 세 명의 동료와 주거지를 공유하고 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난민 ‘파하드’는 32개월째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는 아무리 여성들이 히잡을 썼어도 눈을 통해 표정과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와세프’로 그는 첼시에 가서 프로 축구 선수가 되려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 끝으로, 와세프와 함께 온, 가나 출신의 막내 ‘아베디’가 있다. 그는 리비아로 가는 보트가 방황에 휩싸였을 때 함께 타고 있던 와세프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서 그와 친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인적 드문 섬마을의 겨울 풍경은 탐미적이고 고즈넉하다. 그것은 난민들이 목숨 걸고 도망쳐 나온 분쟁과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나라들과 정반대의 이미지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정지한 채 그 풍경을 한참 응시하며 그 고즈넉함을 배가시킨다. 다만, 4:3의 화면비율은 그것을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즉, 통상적으로 그것은 광활한 자연을 충분히 보여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비율로 취급된다. 갑갑한 화면에 갇힌 풍경이라는 감각은 난민들이 처한 제한적인 자유와 공명한다. 그들에게는 아직 그 섬마을을 마음껏 누릴 자격이 없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영화의 근간이 되는 정서는 아이러니이다. 아마도 난민들에게 스코틀랜드의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머릿속을 채운 전쟁의 이미지와 눈앞에 펼쳐진 고요한 이미지 사이의 괴리감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속에 서 있는 난민들은 자연스럽게 정적인 풍경 속에 녹아들지만, 그와 달리 속내는 복잡하고 시끄러우며 요동친다. 그들은 언제 추방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좌불안석 속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불안은 난민들을 이중으로 무력하게 만든다. 


<림보>는 난민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극적인 사건을 통해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롱테이크와 느린 전개를 통해 인물들의 표정에 주목한다. 우리는 별다른 할 일 없이 TV를 보고 밥을 먹으며 교육을 받고 담배를 태우는 그들의 일상 속에서 난민으로서의 삶의 무게를 감지해야만 한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그들의 일상에 젖어들 때쯤이면 스코틀랜드의 경치는 점차 적막하고 공허하게 다가온다. 풍경이 그들에게 스며들기보다는 그들이 풍경에 스며드는 것이다. 풍경이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기 위해서는 그것을 온전히 누릴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진 오마르는 우드를 케이스에서 꺼내 들지만 차마 연주할 수가 없다. 그동안 그는 가족들 앞에서 그들을 위해 연주해 왔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적 유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문득 그곳에서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마르의 에이전트와 매니저를 자처하며 연주를 독려하던 파하드는 마침내 망명 신청이 승인된다. 반면에, 와세프와 아베디는 추방 명령을 받는다. 아베디는 경찰에 순순히 끌려갔지만, 와세프는 도주를 한다. 그러나 한겨울 섬마을에서 숨을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는 얼어 죽은 채 발견된다. 자연은 홀로 남겨진 인간을 지켜주지 못한다. 편견으로 대하던 주민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먼저 손을 내민다. 일례로, 마트를 운영하는 파키스탄계 주민은 그만을 위해 중동 향신료 ‘수막’을 들여놓는다. 이제 그는 새로운 가족을 위해 우드를 연주하고자 한다.


영화의 마지막. 오마르는 동료 난민들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공연 무대 위에 선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는 순간, 화면비율은 4:3에서 2.35:1로 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스코틀랜드의 드넓은 섬이 아니라 강당에서의 공연을 담기 위해 기꺼이 화면을 넓힌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화면은 확장된다. 그 공연이 서로를 돌보는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따뜻한 헌사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로 인해 일시적으로나마 난민들의 상처는 치유되고 불안은 수그러든다. 그리하여 난민을 환대하는 것은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체온을 지닌 사람들의 유대임을 선언한다. 풍경은 그곳을 온기로 채우는 사람들로 인해 비로소 진정으로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림보>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김경태

연세대학교 강사. 중앙대학교 영상예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으로 『친밀한 유토피아: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가 욕망하는 관계성』을 썼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객원연구원, 부산국제영화제 지석영화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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