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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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라이브러리] 냉전의 마녀들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2 디아라이브러리

2022 DIA library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가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네 번째 추천도서는   

냉전의 마녀들(김태우, 창비, 2021)

입니다.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의 2022년 네 번째 편지,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냉전의 마녀들』(김태우, 창비, 2021)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15일, 중국 선양의 어느 호텔방. 18개국에서 온 21인의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서를 작성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바로 다음 날이면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의 무차별적 공중폭격이 발생했던 북한 지역으로 들어가 현장의 실상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살펴볼 예정이다. 한국 현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김태우의 『냉전의 마녀들: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 속 첫 장면이다. 


이 여성들의 정체는 국제민주여성동맹(Women’s International Democratic Federation; 국제여맹)의 초청에 응한 한국전쟁 진상 조사위원들이었다. 이들의 북한행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극악한 전쟁수행 방식(무차별적 공중 폭격)으로 고통받던 북한의 여성 조직 ‘조선민주여성동맹’이 1951년 1월 4일 발표한 「전세계 녀성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호소문에 대한 응답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프란시스카 더한은 국제여맹을 두고 “진보적 ‘좌파 여성주의’ 국제 우산조직”(a progressive ‘left-feminist’ international umbrella organization)이라 간명하게 정의내린 바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좌파’라는 단어다. 미소 냉전 시대에 스스로의 이념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제는 불행하게도 거의 언제나 진지한 논의의 대상 대신 손쉬운 낙인의 빌미가 되기 십상이었다. 좌파 정체성을 견지한 국제여맹 역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저 “소련이나 국제공산당의 꼭두각시” 정도로 폄하되었고, 그들이 북한 방문 후 남긴 보고서 역시 좌파적 입장에 일방적으로 치우친 페이퍼쯤으로 간단히 치부되었다. 뿌리 깊은 냉전적 사고로부터 기인한 국제여맹에 대한 이같은 선입견은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도 한참이나 더 시간이 흐른 2010년 이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수정되기 시작한다. 오랜 침묵과 망각의 시기를 지나 새로이 등장하기 시작한 연구들이 하나같이 주목하고 있는 지점은 국제여맹이 단순히 맹목적인 공산당 선전 단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국제여맹을 “진보적 ‘좌파 여성주의’ 국제 우산조직”으로 정의한 더한의 정의에서 ‘좌파’ 다음으로 눈에 띄는 표현은 ‘국제’라는 단어다. 국제여맹이 ‘여성’이라는 공통의 조건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같은 여성이라 하더라도 속살을 들여다보면 각 나라들이 처한 구체적 상황은 서로 상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제3세계 국가 출신의 여성들에게는 식민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 어느 것 이상으로 중요했다. 피식민 역사의 경험이야말로 대다수의 제3세계 국가들이 공통으로 직면한 역사적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국제여맹이 북한 여성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여 직접 조사위원들을 파견하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국제여맹을 “진보적 ‘좌파 여성주의’ 국제 우산조직”으로 정의한 더한의 표현에서 우리는 또한  ‘우산조직’이라는 표현에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좌파’ 조직이라고는 했지만 실상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 국가들의 국제여맹 지부들과 그 구성원들이 결코 단일하고 일목요연한 정치적 지향성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이는 한국전쟁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북한으로 파견된 다양한 국적의 조사위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치적으로 다양한 입장을 견지한 여러 구성원들을 하나의 거대한 ‘우산조직’ 안으로 기꺼이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국제여맹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실제로 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들은 북한 방문 당시 여러 차례 서로 다른 정치적 차이들을 드러내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차이들이 결과적으로 그들 사이에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충돌이나 반목과 같은 상황을 초래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 북한에서 “시체가 매일 쌓여갔다”는 “타협할 수 없는 진실들”을 조사위원들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야말로 그들이 북한에서 마주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들]은 최종보고서의 내용에 합의하는 데 있어서는 커다란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북한의 상황이 논쟁의 여지없이 너무나 파괴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곳[북한]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너무나 절박하고 절망적이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조사위원들은 여성이라는 동일한 정체성과 북한의 파괴적 현실 앞에서 상호 간의 이해도를 높여갔을 뿐만 아니라, 북한여성들과도 강한 연대감을 형성해갈 수 있었다. (313-314p)

국가와 인종, 계급 등의 차이를 넘어서 국제적 차원의 여성주의 평화운동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준 국제여맹 한국전쟁 조사위원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책의 앞표지에 프린트된 ‘냉전’이라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허를 찔린 기분이 든다. 어딘지 모르게 서글퍼지기도 한다. 한국전쟁이라는 ‘열전’(Hot War)이 발발한 시기가 세계사적 관점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치하던 ‘냉전’(Cold War) 시기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적어도 한반도에서 그것은 ‘차가운 전쟁’이 아니었다. ‘차가운 전쟁’이 될 수 없었다. 아니, 냉전이기는커녕 더할 나위 없이 참혹한 열전이었다.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 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대학원 평화학과 박사과정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경계의 사유로부터 촉발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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