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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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라이브러리] 어느 아메리카 흑인과 아시아인의 ‘구치소 흑인문학’ 읽기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2 디아라이브러리

2022 DIA library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가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다섯 번째 추천도서는 

패트릭과 함께 읽기(미셸 쿠오 지음, 이지원 옮김, 후마니타스, 2022)

입니다.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의 2022년 다섯 번째 편지,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패트릭과 함께 읽기』(미셸 쿠오 지음, 이지원 옮김, 후마니타스, 2022)

어느 아메리카 흑인과 아시아인의 ‘구치소 흑인문학’ 읽기

 

 

 

[타이완계 미국인인] 나는 흑인문학을 통해 미국의 역사를 가르쳐 보자는 명확한 구상을 품고 미시시피 델타로 향했다. 내게 감동을 주었던 작품으로 수업하는 장면을 나는 상상했다. (......) 흑인문학은 내게 세상을 똑바로 마주하고 자신의 경험을 정직하게 평가해 보겠다는 의지를 경탄하도록 가르쳤다. 책은 나를 변화시켰고, 내게 책임을 안겨 주었다. 그리고 나는 책이 [흑인] 학생들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다. 염치없이 낭만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19쪽)

이 책의 저자 미셸 쿠오는 타이완계 미국인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학과 젠더학을 공부했다. 2004년 ‘티치 포 아메리카’(Teach for America) 프로그램에 지원, 미국 남부 아칸소 주 델타 지역의 퇴학생들을 한데 모아 놓은 대안 학교에서 2년간 문학을 가르쳤다. 이후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하여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던 중, 아끼던 학생 패트릭이 살인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다시 남부로 돌아간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구치소에서 다시 만난 옛 선생과 제자는 또 한 번 문학을 매개로 과거에 어쩔 수 없이 중단되어야만 했던 그들 사이의 특별한 ‘수업’ 또는 (말의 가장 바른 의미에서의) ‘대화’를 재개하게 된다. 

흑인이 아니라 미국 내 타이완 이주민 2세인 저자는 어떠한 연유에서 흑인문학과 만나 그토록 매료되었던 것일까? 그는 흑인문학을 통해 흑인과 아시아인 모두 “백인 우월주의 역사라는 동일한 맥락” 속에 위치해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미국에서 나의 역사는 매우 짧고 단순했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대체제로 흑인 전통에 기대었고, 그럼으로써 내 역사의 부재를 채우고 미국의 과거에 대해 지분을 주장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흑인문학을 통해 흑인 학생들을 가르쳐보려 했던 저자의 야심찬 시도는 예상과 달리 먹혀들지를 않는다. 그의 말처럼 ‘염치없이 낭만적인 생각’에 불과했던 것이다. 초조해진 그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써보기로 결심한다. 과거 흑인들을 대상으로 백인들이 무차별적으로 행했던 끔찍한 린치 현장 사진을 학생들이 돌려 보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반응은 없다. 아니, 오히려 분위기는 더 악화된다. 학생 한 명은 숨을 멈추기라도 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사진을 뒤집고 책상 위에 엎드리고 만다. 당황한 저자는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학생을 윽박지른다. 고개 들어. 안 그러면 0점이야. 하지만 이내 스스로의 우쭐대는 모습에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진 저자는 수업이 끝난 후 사진을 서랍에 넣은 뒤 두 번 다시는 꺼내어 보지 않는다.

시행착오 끝에 미셸 쿠오는 해결책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바로 <나는>이라고 하는 시(詩) 덕분이다. 

나는 ______. / 나는 느낀다, ______. / 나는 궁금하다, ______. / 나는 듣는다, _______. / 나는 본다, ______. / 나는 이해한다, ______. / 나는 말한다, _____. / 나는 꿈꾼다, ______. / 나는 노력한다, _______. / 나는 희망한다, _______. / 나는 원한다, _______. / 나는 척한다, ______. / 나는 운다, ______.

일견 단순하기 짝이 없는 구조에 손쉽게 점수를 딸 수 있을 것만 같은 평범한 빈칸 채우기 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 시의 강점은 바로 글을 쓰는 이들로 하여금 강제로라도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글쓰기에 몰두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미셸 쿠오는 그냥 책이 아니라, 학생들이 책 속의 인물과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것이 내가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을 사랑하는 이유였다. 그는 인종 문제가 그보다 더 중대한 자아라는 문제를 은폐하는 작용을 한다고 썼다. 그렇다고 그가 인종적 불평등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작업은, 그런 불평등으로 인해 그리고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내가 처음 델타에 왔을 때 수업 활동으로 아이들에게 <나는>이라는 시를 쓰게 한 것도 결국은 그 때문이었다. 그건 그들의 자화상이었다. (......) 이제 나는 깨닫고 있었다. 누군가를 내가 보기에 그가 담아내야 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우려 해서는 안 된다. 우선은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367-68쪽)

그 결과 패트릭은 나에서 시작하여 마침내 흑인 운동가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문장들을 만나기에 이른다. 여기서 ‘나’와 ‘프레더릭 더글러스’는 결코 별개가 아니다. 나에 대한 이해가 곧 더글러스에 대한 이해이며, 더글러스에 대한 이해가 곧 나에 대한 이해가 된다. 패트릭이 ‘개별’에서 ‘보편’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모습은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 절차를 밟던 패트릭 말이다. 무언가 극적이고 감동적인 결말을 기대했을 이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여기에 어떤 기적 내지는 반전 같은 건 없다. 그는 결국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것이 현실이다. 다만 모범수로 가석방된 덕택에 패트릭은 2년 반 만에 출소한다. 그래서 그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짧지만 인상적인 문장을 남긴다. 

“패트릭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동시에 모든 일이 일어난다.”

아마 다수에게는 흑인에다가 살인 전과자인 패트릭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미셸 쿠오는 안다.

 


누군가를 학생으로 안다는 것은 그를 언제나 학생으로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분투를 마음 깊이 느끼는 것이며, 또한 그의 분투 속에서 나 자신의 분투를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한 학생이 각고의 노력으로 자기 형상을 갖추어 가는 모습을 ― 오비디우스의 인물이 한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로 변해 가듯이 그가 스스로를 비틀고 일그러뜨려 마침내 온전한 변신이라는 과제를 완수하는 과정을 ― 지켜보는 것이며, 그러고는 차마 그것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왜일까? 왜냐하면 그가 나를 믿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 새로운 자아가 주는 느낌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 변화된 모습을 지킬 수 있도록 나의 도움을 바라기 때문이다. (397쪽)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 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대학원 평화학과 박사과정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경계의 사유로부터 촉발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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