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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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라이브러리] 도시 디아스포라이자 심리적 디아스포라로서의 노숙인의 삶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디아스포라영화제에서 

지난 10년간 다루었던 여러 디아스포라 이슈를 전체적으로 되짚어보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변화된 의미를 영화와 함께 살펴보고자 기획한 코너!

 

어려워 보일 수 있는 키워드를 친근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 영화로서 다시 한 번 풀이해보고자 합니다.

그때 그 시절의 디아스포라 이슈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무비라이브러리를 통해 앞으로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무비라이브러리

Movie Library

 

Keyword 7 : 도시 디아스포라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Lead Me Home)>, (2021)

 

일곱 번째로 만나는 키워드는 '도시 디아스포라'입니다.

2018년 제6회 디아스포라영화제 포커스 주제가 현재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지, 

영화를 통해 함께 보시죠.  

 

 

 

 

keyword 7: 도시 디아스포라

영화 <너의 집은 어디인가(Lead Me Home)>, (2021): 도시 디아스포라이자 심리적 디아스포라로서의 노숙인의 삶

 

넷플릭스의 <나의 집은 어디인가>(2021)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의 심각한 노숙문제를 다룬 40분 분량의 다큐멘터리이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촬영을 진행하면서 노숙인들의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도 했다. 영화는 어느 노숙인의 잠든 얼굴에 대한 클로즈업으로 시작해 새벽의 텅 빈 거리를 응시한 뒤, 밝아 오는 하늘에서 조감으로 거대한 빌딩숲을 천천히 훑고 지나간다. 도시를 배경으로 사람들은 분주하게 하루를 준비한다. 노숙인들이라고 다를 게 없다. 영화는 노숙인을 일상적인 도시 풍경의 일부로 묘사하며 도시의 엄연한 구성원으로 호명하고 있다. 


세를 놓는다는 광고문구가 달린 텅 빈 건물이 즐비하지만 도시는 끊임없이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다. 마천루가 높아지면서 도시가 화려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가난하고 집 없는 사람들은 그만큼 더 늘어만 간다. 도시의 명과 암이 더 뚜렷해지는 형국이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는 노숙인들의 허름한 텐트들이 늘어서 있다. 거대한 빌딩숲 사이에서 노숙인들은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다. 제대로 된 집은 아니더라도 안정적으로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곳은 불안정한 주거지이다. 그들은 도시 정책에 따라 언제든지 퇴거하고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도시 디아스포라’이다. 


반복컨대, 노숙인들의 일상은 비노숙인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텐트에서 나와 양치질을 하고 공동 샤워장에서 씻으며 무료 급식으로 배를 채운다. 나아가 소소하게 일도 하고 연애도 한다. 다만, 비노숙인들과 달리 각각의 일상적 행위들을 위한 장소가 다 다를 뿐이다. 같은 시간, 카메라는 집 안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안락한 모습을 멀찍이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그것은 말 없는 노숙인들의 시점이다. 그들은 그 빈부격차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노숙인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과 반대로 비노숙인들의 삶으로부터는 거리를 둔다.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집을 바라보는 노숙인의 심리상태에 공감하도록 해준다.  


이제 더 이상 집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삶의 근간, 따뜻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재산을 불리고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물화 된다. 카메라와 마주한 노숙인들은 집 없는 삶에 대해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서러움에 눈시울을 붉힌다. 그들은 장애인이거나 전과자이거나 성 소수자이거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여성으로서, 이미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였다.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단순히 집 없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빈번한 폭력에 시달린다. 집이 없다는 이유로 그들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다. 집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계급을 대변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성과 인격을 담보한다. 집이 없다는 건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어버린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낀 어느 노숙인 어머니는 열악한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면서도 두 아이에게 손수 음식을 해 먹이면서 그들이 노숙인의 굴레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물론 그들이 그저 남들보다 게으르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의 구조적이고 정책적인 문제 때문이다. 일례로, 노숙 하면서도 집세를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일정한 소득이 생겼다는 이유로 노숙인에 대한 급식 지원이 끊기면서 모아 놓은 돈을 당장의 식비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러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직접적인 지원 제도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있다. 아마도 노숙인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시선일 것이다. 


노숙인 재활 센터 건립을 위한 공청회에서는 해당 주민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힌다. 노숙인들은 잠정적인 마약 중독자이자 마약 거래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 있는 사람들의 안락한 삶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집값을 떨어트릴지도 모른다. 집의 부재는 노숙인들에게서 도시에 대한 소속감을 박탈시킨다. 그들의 인종이 무엇이고 성별과 성정체성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들은 집이 없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 집이 없다면 시민으로서의 권리조차 충분히 누릴 수 없다. 그리하여 도시 디아스포라는 필연적으로 심리적 고립, 심리적 디아스포라의 삶으로 이어진다. 

 

 

 

 

김경태

연세대학교 강사. 중앙대학교 영상예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으로 『친밀한 유토피아: 한국 남성 동성애 영화가 욕망하는 관계성』을 썼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객원연구원, 부산국제영화제 지석영화연구소에서 전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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