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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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라이브러리] 막을 수 없는 일들과 막을 수 있는 일들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2 디아라이브러리

2022 DIA library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가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여섯 번째 추천도서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정혜신 & 진은영 지음, 창비, 2015)

입니다.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의 2022년 여섯 번째 편지,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정혜신 & 진은영 지음, 창비, 2015)

막을 수 없는 일들과 막을 수 있는 일들

 

 

주인을 찾지 못한 물건들이 임시 보관되어 있는 중이었지만 유실물 센터는 아니었다. ‘유실물 센터’의 사전적 정의는 “점유자가 잃어버린 물건을 보관하는 곳”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과는 반대되는 상황에 가까워 보였다. 그러니까 ‘점유자가 물건을 잃어버렸다’기보다는, 차라리 ‘물건이 점유자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물건을 찾아갈 주인은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10.29 이태원 (‘사고’가 아니라) ‘참사’에서, (‘사망자’가 아니라) ‘희생자’들이 남긴, ‘유실물’이 될 수 없는 ‘유품’들이었다. 유품. 고인(故人)이 생전에 사용하다 남긴 물건. 

 

.... 참사를 불가피하다거나 불운한 일이었다고 치부할 때, 그리고 그 일들을 드러내고 성찰하려는 간절한 움직임을 방해할 때, 그것은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가장 큰 신성모독은 신의 뜻을 섬긴다면서 인간의 모든 악을 신에게 짊어지우는 것이므로. 지금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이 많은 고통의 문제들이 신이나 불운의 탓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상처임을 인정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있음을 아는 것, 이것이 사회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첫걸음이다. (9쪽)

​진은영 시인, 그리고 정혜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함께 쓴 책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사회적 트라우마의 치유를 위하여』 속 한 구절이다. 

 

10.29 참사는 “불가피하다거나 불운한 일”이 아니었다. “신이나 불운의 탓”도 물론 아니었다. 간단하게 그것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만들어낸 상처”, 즉 인간의 일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인재(人災)라고 말한다. “그 일들을 드러내고 성찰하려는 간절한 움직임”을 거슬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반전이 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참사”가 실은 2022년 10.29 참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 일이, 이토록 참혹한 규모의 참사가 거듭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책들을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이 지면에서 나는 이번에 ‘국가폭력’ 문제에 대한 글을 거진 완성해둔 상태였다. 그 글을 담당자 선생님에게 송고하려 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고쳐먹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렇게 급하게 새로 쓰게 된 것이 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시는 이 글이다.

 

진은영 시인이 쓴 ‘그날 이후’라는 시 한 편이 있다. 2014년 당시 세월호에 탑승해 있었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의 이야기가 담긴 시다. 2014년 10월 15일, 예은이의 열일곱 번째 생일을 앞두고 시인은, “아이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으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부모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예은이의 목소리를 대신 발화한다. 이 시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다음과 같았다.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 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 ‘그날 이후’ 중에서

 시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예은이의 목소리에는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살아 있는 이들이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빼곡히 담겨 있다. 예은이는 그것들을 기어이 말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남겨진 이들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예은이는 남겨진 이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마련해주고, 살아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떠난 자가 남겨진 이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막을 수 없는 일들과 막을 수 있는 일들

두 손에 나누어 쥔 유리구슬

어느 쪽이 조금 더 많은지

슬픔의 시험문제는 하느님만 맞히실까? 


- ‘봄에 죽은 아이’ 중에서 

20221029일 또 하나의 그날 이후’, 우리 사회의 논의 수준이 고작 막을 수 없었던 일이냐 막을 수 있었던 일이냐 사이의 공방이라니 참담하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에는 공동저자 정혜신의 이웃 치유자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상처받은 이들의 상황을 잘 관찰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치밀하게 헤아리는존재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20221029그날 이후이제 겨우 보름 남짓 지났다. 115, 여러모로 기괴했던 이른바 국가 애도 기간은 공식적으로 끝이 났지만 우리의 애도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 ‘그날 이후’, ‘봄에 죽은 아이는 진은영 시인의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문학과지성사, 2022)에 수록되어 있다.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 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대학원 평화학과 박사과정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경계의 사유로부터 촉발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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