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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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라이브러리]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3 디아라이브러리

2023 DIA library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가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세번째 추천도서는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김성경 지음, 창비, 2023) 입니다.
'재일 탈북민'의 이야기를 디아스포라적 시각으로 분석한 이번 디아라이브러리, 함께 읽어볼까요?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고백하자면 나는 그들[북조선 사람들]을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북조선’이라는 분단 반대편의 존재로 단순화하여 감각하였다. (...) 북조선 체제의 희생자 혹은 가난과 굶주림의 피해자의 모습이 그들의 얼굴에 깊게 각인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남한 사회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다. ‘북조선’이라는 국가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이들의 행위주체성의 다면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분단을 가로질러 이주하면서 탈분단적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하고, 국경을 넘나들며 코즈모폴리턴적 주체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 수많은 얼굴로 존재하는 그들에게 좀더 다가가는 것은 남한 사회와 사람들의 정체성에 깊게 내재해 있는 분단을 반추할 기회이기도 하다.”(10~11쪽)
북조선 혹은 북한은 우리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베일에 싸여 있는 대상이다. 안타깝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지극히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조선 체제의 희생자’ 또는 ‘가난과 굶주림의 피해자’. 분단의 거리는 이토록 요원하기만 하다. 

북한 사회와 문화, 이주, 여성 등을 주요 연구주제로 삼고 있는 이 책의 저자 김성경은 이처럼 우리와 ‘가장 가까운 타자’인 북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들에 주목하고 있다. 왜일까. 그가 보기에 북한 여성들이야말로 “식민과 분단의 중층적 역사성을 내재한 가장 중요한 집단”이다. 분단과 전쟁의 거대한 파고 속에서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의 급격한 이식 과정을 겪게 되었고 그 부작용을 심하게 앓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990년대 북한의 극심한 경제(식량) 위기를 상징하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일 것이다. 이처럼 북한의 열악한 정치·사회·경제 구조가 북한 여성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국경을 넘나드는 존재로 내몰아버렸다. 

연변의 조선족은 생존을 위해 국경을 오가야만 하는 북한 여성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중요한 존재다. 중국의 연변 지역은 과거 일제 식민지 시기에 경제 상황이 악화되자 상당수의 한인들이 이주하여 형성된 곳으로, 이후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인정받게 된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접경 지역에 오랫동안 구축된 친족 네트워크야말로 조선족과 북한 사람들을 가깝게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끈이었다. 그러던 것이 1992년 중국과 한국의 외교 관계가 수립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는 공교롭게도 북한에서 최악의 식량난이 발생한 시기와 정확히 맞물린다. 조선족과 남한의 교류가 늘어나면서 북한과 조선족 사이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 결과 연변 지역이 지니고 있던 ‘접경’으로서의 역동성은 “소비주의와 자본주의가 추동한 욕망과 삶의 형태로 빠르게 동질화”되고 만다. 

하지만 척박한 현실 속에서 기어이 살아남은 북조선 여자들은 최소한의 생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이제껏 분투해왔다. 저자의 말마따나,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이 책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대목은 무엇보다 ‘재일(在日) 탈북민’에 대한 서술일 것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일본에도 엄연히 탈북민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고 생경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비공식적 통계에 의하면, 일본을 선택한 탈북민의 숫자가 2백여 명 되고 이 중 약 150명은 도쿄에, 50여 명은 오사카에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만난 재일 탈북 여성은 아버지가 재일조선인(자이니치) 1세였고, 어머니는 일본인인 경우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여 자리를 잡은 아버지는 ‘북송 사업’ 당시 일본의 차별을 피해 북한행을 택했다. 이후 청진에 정착해 살면서 일본에 남겨진 가족들의 송금으로 근근이 살아간다. 하지만 일본에서 온 그들은 북한에서 ‘째포’라는 멸칭으로 불리면서 북한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으므로 당원이 되거나 좋은 직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북한 생활을 힘들어한 일본인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만 이야기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탈북민 정체성을 밝히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일본 내에 북한과 소통하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이 있기에 자신의 존재가 북조선에 알려질 위험이 있다. 북한에 가족을 남겨두고 온 탈북민이라면 더더군다나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기가 어려운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결정적으로, 북한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그 자체로 너무나 좋지 않기 때문에 굳이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밝힐 이유가 없다. 


나는 분단 문제를 국가가 아닌 사람들의 수준에서 접근하는 것을 선택했다. (...) 식민과 분단은 단순히 국가 수준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정체성, 삶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식민과 분단의 위계 서열에서 가장 하위에 존재하고 있는 집단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24~225쪽)
이 책에 소개된 재일 탈북민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저자가 ‘분단 문제’를 “국가가 아닌 사람들의 수준에서” 들여다보기로 마음먹게 되었는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남한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강제 징용을 간 후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간 아버지, 남편을 따라 이국땅으로 건너갔으나 평생 모국을 그리워한 일본인 어머니, 그리고 부모님의 자취를 좇아 일본으로 이주한 그녀. 멀리 갈 것도 없이, 한 가족 세 식구의 이 작고도 내밀한 이야기 속에 이른바 분단 문제가 고스란히, 압축적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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