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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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라이브러리]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3 디아라이브러리

2023 DIA library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 이종찬 평화학 연구자​가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네 번째 추천도서는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양재화 지음, 어떤책, 2023) 입니다.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 넓게는 인간사의 어두운측면, 곧 죽음과 비극에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여행하는 모든 형태를 의미하고, 좁게는 단순한 재미나 호기심보다는 좀 더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전쟁이나 학살 현장 또는 대규모 재난이 일어났던 장소를 찾아 그 사건을 기리며 교훈을 되새기는 여행을 말한다.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목적지로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뉴욕의 9.11테러 현장인 그라운드제로가 있다.” (7)

이런 것도 여행이라 말할 수 있을까?”

 

 

여행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진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나는 일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 대기실에서 보딩 타임을 기다리며 지인과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의 목적지는 히로시마 평화공원, 보다 구체적으로는, 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일본인 피폭 희생자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한인 희생자 추모비를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전화기 너머에서 지인은 부러운 목소리를 담아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너 일본 여행을 가는 거구나.” 순간적으로 멈칫, 했다. 여행이라.. 그런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떠나려 하는 것이 정말 여행이 맞나? ‘여행이라는 한자의 어원에 군사주의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던 건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관광이란 말은 어떨까. ‘관광(觀光)’. ()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다. 관광도, 여행도 아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다만 방문하려 한다고. 방문(訪問). 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찾아가() 묻고() 싶은 것이다.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떠남이라 해도 좋겠다.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의 저자 역시 아마도 나와 비슷한 류의 경험을 했던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자신이 떠난 여행 아닌 여행의 이름을 (‘여행이 아니라) ‘다크투어라 따로 명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전쟁이나 학살 현장 또는 대규모 재난이 일어났던 장소를 방문하는 행위를 두고 간단히 여행이라 말하고 끝낼 수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여행자가 아니라 다크투어리스트’, 혹은 (나의 표현으로 바꾸어 말하자면) ‘방문자의 눈으로 바라본 같은 세계의 다른 모습.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 아닐까 싶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저격병들로 인해 사방이 포위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 사라예보에는 최소한의 생활물자를 공급받기 위해 건설된 지하 터널이 있다. ‘희망의 터널로 불리곤 하는 이곳 역사적 현장을 직접 방문했을 때 그러나 저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애초 총 길이 800여 미터에 달하는 땅굴이었지만, 현재 남아 있는 터널은 10여 미터 길이에 불과하여 얼마 가지도 않아 앞이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건 바로 다음 대목이다. 저자는 실망한 자신의 모습을 거리를 두고 차분히 반추해본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800미터에 이르는 땅굴을 걸어 반대편으로 나갈 수 있기를? 쫄깃하고 짜릿한 전쟁 엔터테인먼트를?”(174) 그의 주위에는 사라예보의 아픔을 이해한다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어느 중년의 호주 남성과,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겠고 지루하다며 심드렁한 태도를 보인 동행인 등이 있었다. 그런 그들과 무의식 중에 전쟁 엔터테인먼트를 기대했던 자신, 그 사이에 놓인 거리는 과연 얼마나 멀고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자문하는 듯한 저자의 태도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다크투어의 장소는 기억의 공간이기도 하다. ‘참혹했던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는 하나의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저자는 이 곳에서의 관람 체험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곳에 전시된 것들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실제 유대인 수용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생필품들이었다. 그 어떤 예술적 재현이 아닌 실재그 자체. “박물관에서 일반적으로 접하는 가지런한 전시물과 달리, 그 주인들의 운명을 증언하듯 마치 버려진 것처럼, 내던져진 것처럼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물건들은 실재로서 그 어떤 재현보다도 강렬했다.”(66~67)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적이 있는 나 역시 비슷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1수용소에는 한 가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었다. 바로 그곳에 억류되어 있던 사람들. ‘그때 그 사람들은 정작 가뭇없이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무수한 생활의 흔적들만이 거대한 규모로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표현이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것처럼 이미 아우슈비츠를 둘러싼 수많은 역사적 문헌과 기록 들이 존재하고 있건만, 그것들은 언제나 우리의 이해 수준을 훨씬 상회해버리고 만다. 아우슈비츠는 표상 혹은 재현이 불가능한 사건인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이미 벌써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미학적 질문이 제기된다. ‘예술은 재현/표상 불가능한 대상과 사건들을 재현/표상할 수 있는가, 재현/표상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가.’ 예술의 기본 원리는 애초부터 재현’(representation)이었다. 말이 담고 있는 어원 그대로, ‘현존하는’(present) 대상의 이미지를 다시’(re-) 만들어내는 행위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은 나로 하여금 이 재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미학적 원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재현으로서의 예술 외에 실재로서의 예술’, 그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외에도 이 책에는 저자가 오랜 기간 발품을 팔아 직접 둘러본 다양한 장소들이 서술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기념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와 투올슬랭 제노사이드 박물관, 칠레의 기억과 인권 박물관, 그리고 한국의 제주 4.3평화기념관과 북촌리 너븐승이 유적지 등. 지면의 한계상 더 소개할 수가 없어 그저 아쉽기만 하다.

 

(여행 아닌)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여행의 시간은 끝이 나지 않는다. 여행의 시간은, 단순히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뿐 아니라, 그에 더해, 여행을 떠나기 전과 여행을 다녀온 후의 시간 그 전부를 포함하는 총체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여행 전후에 공부하고 되씹고 기억하는 일을 모두 합한 총체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11)

 

그러니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여행의 시간은 끝나는 법이 없다고. 출발 전에도, 도착 후에도, 여행의 시간은 무한히 지속되고 있다고.

 


 

 

이종찬

 

 

대학(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경계의 사유로부터 촉발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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