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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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라이브러리] '세상의 북쪽'에서 온 아이들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4 디아라이브러리

2024 DIA library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이종찬 선생님께서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디아라이브러리,

 

다섯번째 추천도서는 

 

 


 


 

『파도의 아이들』 (정수윤, 돌베개, 2024) 입니다. 

 

 

‘세상의 북쪽’에서 온 아이들

 

일본문학 번역가 정수윤이 13년 동안 100여 명의 탈북 청소년들과 만나 교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소설 『파도의 아이들』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10여 년 전 폴란드와 체코의 어느 작은 국경 마을 ‘치에신’과 ‘체스키 테신’에서 보낸 여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소설 속 다음과 같은 구절과 마주치고 나서였다.​

​ 

10분도 안 돼 꽁꽁 언 강[두만강] 앞에 내려섰다. 강폭은 학교 운동장 너비의 반도 안 됐다. 축구로 치면 골대에서 중앙선까지만 달리면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뒤에서 군인이 총질할 위험이 있으니 달리기가 5초는 단축되리라.(42쪽)
​인용한 대목은 북한과 중국 사이의 국경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두만강에 대한 묘사 부분이다. 강의 양쪽 폭이 고작해야 학교 운동장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 축구로 치면 골대에서 중앙선까지 정도의 거리에 불과하다는 것. 그런데 그것이 엄연히 국가의 경계라는 사실은 보통의 한국인이 국경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상식과는 크게 불일치하는 것이었다. 

2015년 여름 한 주 동안 내가 머물렀던 ‘치에신’과 ‘체스키 테신’은 행정구역 상 폴란드와 체코 각각의 별개 도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의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인구 5만여 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두 마을 사이의 국경은 도저히 국경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껏해야 50여 미터 거리 정도에 불과한, 한국의 시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적당히 낡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다리가 국경의 전부였을 뿐이다. 경계를 지키는 이도, 통행증이나 신분증을 요구하는 이도 없었다. 이 국경 같지 않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심지어 화폐도, 언어도 달랐다. 체스키 테신에서는 ‘도브리 덴’이라고 인사하지만, 치에신에서는 ‘진 도브리’라고 인사했다. 분단 국가 출신의 아시아인인 나는 촌스럽게도 이 왜소하기 짝이 없는 국경 다리를 몇 번이고 느릿느릿 왕복하면서 묘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파도의 아이들』 속 세 명의 북한 청소년(‘설’, ‘광민’, ‘여름’)이 탈북 과정에서 크나큰 위험을 감수하고 건너야만 했던 두만강에 대한 묘사를 읽으면서 어느새 나는 치에신과 체스키 테신 사이의 국경 다리를 동시에 생각하고 있었다. 

세 아이들의 탈북 배경은 동일하지 않다. 설과 여름이 북한의 어두운 현실을 피해 홀로 탈북을 감행하기로 택한 반면, 북한에서 나름 전도유망한 축구선수의 길을 밟아가고 있던 광민은 애초 탈북을 원하지 않았던 경우다. 가족 몰래 탈북 브로커 일을 하던 엄마가 정부 당국에 발각되자 어쩔 수 없이 엄마와 단둘이 탈북 길에 올라야만 했을 뿐이다. 

탈북 과정 중 어머니가 단속반에 걸려 졸지에 홀로 연변 땅에 갇혀버리고 만 광민은 우연히 또래 여학생 두 명과 마주치게 된다. 광민은 묻는다. “그쪽도 강 건너에서 왔습니까?” “아니? 난 바다 건너에서 왔는데...... 비행기 타고.” 알고 보니 그들은 한국에서 단기 여행을 온 대학생이었다. 며칠 뒤 다시 만난 한국 대학생들에게 광민은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사실은 저, 유학생이 아닙니다. 저는 말이죠, 세상의 북쪽에서 왔습니다.” 맨몸으로 강을 건너온 탈북 청소년 광민과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한국 대학생. 둘 사이에 거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과연 얼마만큼일까. 

각자의 우여곡절 끝에 한자리에 모여 이제 한국행을 거의 목전에 둔 상황에서 아이들은 그러나 동남아 어느 국가로 추정되는 이민국 수용소에 갇혀버리고 만다. 광민은 수용소 벽에 붙어 있는 도마뱀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그에 비유한다. 
​


형, 그거 알아요? 도마뱀은 도망칠 때 자기 꼬리를 자른다는 거. 잘린 꼬리는 적을 유인하기 위해서 자기가 진짜인 양 폴짝 폴짝 춤을 춘다는 거. 처음에 도마뱀을 잡으려고 꼬리를 건드렸다가 그 모습을 봤을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하고 귀여워서 웃음이 절로 났는데, 나중에는 눈물이 와락 쏟아졌어요. 이 작고 귀여운 도마뱀도 이토록 살고 싶어 하는구나. 살아야겠다고 아우성을 치는구나. 

  내 몸의 어떤 부분을 잘라서라도 살자, 살아야 한다. 저도 그런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나는 어머니를 잘라 냈습니다. 나를 낳아 주고 길러 준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요. 살아는 있을까요.(193쪽)

위기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꼬리를 스스로 잘라낸 뒤 도망치곤 하는 도마뱀의 모습을 목격한 광민은 ‘나는 어머니(꼬리)를 잘라 냈습니다’라 말하며 자책하고 있다. 그러나 꼬리(어머니)의 관점에서 보면 또 다른 겹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잘려진 꼬리는 적을 유인하려는 목적으로 마치 자기가 진짜인 양 폴짝 폴짝 뛰어 적을 유인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중국 공안에게 잡혀가는 급박한 와중에서도 광민을 위해 몰래 지갑을 흘려 두었다. 꼬리는 버림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저자는 세 명의 탈북 청소년에게 ‘파도의 아이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왜 파도의 아이들일까. 언젠가 두만강 보초 군인 용태 아저씨는 두만강을 넘어가려는 여름을 향해 죽지 말고 살아서 바다를 보러 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바다는 “이 세상이 모두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세상 물은 다 이어져 있으니까.”(55쪽)


그래서였을까. 기약 없어 보이는 수용소 생활을 뒤로 하고 아이들은 담장 너머로 살짝 엿보이는 바다를 보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새로운 국적, 새로운 나라, 새로운 땅, 그런 것들이 내게 자유를 줄 수 있으리라 믿었던 건 어리석은 환상이었다.”(205쪽) 그리고 마침내, 드디어 목도하게 된 바다 앞에서 아이들은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 여기, 이 바다를 우리의 나라로 삼자.” “우리는 우리가 결정하지 않은 세상 따위 원하지 않아. 여기가 바로, 우리의 나라야.”(212쪽) 그리고 소설은 막을 내린다. 


마지막으로 남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 같은 결말은 해피 엔딩일까, 새드 엔딩일까. 내 머릿속에서는 아이들이 파도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이미지가 자꾸만 어른거린다.  



이종찬

​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경계의 사유로부터 촉발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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