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FF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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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라이브러리] 오키나와의 바다에서 가자의 바다를 상상하다

관객 여러분이 영화뿐만 아니라 폭넓은 문화예술 장르 안에서

‘디아스포라’를 이해하실 수 있도록 '디아스포라' 관련 도서들을 소개해드리는 코너!

 

2025 디아라이브러리

2025 DIA library

 

올해도 '디아스포라'를 다방면으로 연구해오신 ​이종찬 선생님께서 필자로 함께합니다.

 

 

어렵기도 하지만, 결코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를

보다 쉽고 편안하게, 마치 가까운 지인에게 띄우는 짧은 편지글과 같은 느낌으로 소개해주신

 

올해의 두번째 추천도서는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오카 마리 지음, 박용준 옮김, 2025)

 

 

​오키나와의 바다에서 가자의 바다를 상상하다​

 

​지난 5월 올해의 디아스포라영화제는 막을 내렸지만 어떤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그 시간 속을 살고 있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이 마음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올해 디아스포라영화제의 특집 세션은 2023년 10월 7일 발발 이후 현재까지도 지속 중인 가자 전쟁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그 중의 한 작품이 이예진 감독의 단편 다큐멘터리 <팔레스타인을 위한 두 대의 카메라>(2025)였다.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여러 명의 팔레스타인 유학생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는데, 그 중 한 팔레스타인 여성의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두 겹의 삶을 살고 있는 기분이에요.” ‘두 겹의 삶’은 내가 편의상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실제 그는 영어로 “dual life”라는 표현을 썼다. 물리적 몸은 여기 한국에 있지만, 동시에 자신은 무차별적 폭격 속에 위태로이 놓인 저기 가자에 있기도 하다는 의미였다. 이곳 한국과 저곳 가자 사이의 거리는 중요치 않다는 것. 하나의 몸, 두 겹의 삶. 과녁의 중심을 정확히 꿰뚫은 듯한 이 표현에 나는 실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GV 시간에 게스트로 참석한 팔레스타인 당사자들에게 각자의 맥락에서 한국과 팔레스타인 사이 ‘두 겹의 삶’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들려 달라 부탁했더니 역시나 놀라운 답변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았다. 한국의 대학에서 여성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어느 팔레스타인 여성은 또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서구(Western) 대학에 적을 두고 여성학을 공부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또 한 번 망치로 강하게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팔레스타인 땅을 떠나 와 한국에서 가자 전쟁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 당사자의 목소리에는 하나같이 그 자체로 힘이 있었다. 한국의 대학에서 ‘파인 아트’(fine art)를 전공하고 있다던 어느 학생의 코멘트도 역시나 잊히지 않는데, 그가 자신의 문제의식을 어떻게 예술적 작업으로 형상화해내고 있을까 상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함께 나누고픈 목소리들이 정말이지 차고도 넘치는 현장이었다. 시간의 제약만 없다면 그저 하염없이 밤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을 정도였다. 올해 영화제의 여러 아름다운 풍경들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 

 

 프랑스 문화센터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건물에 들어서자 현관 옆 벽걸이 액자에 담긴 화려한 그림이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보니 가자 지구의 지하철 노선도였다. 그것이 허구의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 그것은 가자 지구의 예술가 무함마드 아부살이 제작한 <가자 지구의 지하철>(2012)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지하철(Metro)을 나타내는 M이란 글자를 큼지막하게 곁들여, 아래쪽에 아랍어로 ‘지하철 역’이라고 표시한 표지판을 만들면서 그가 구상한 노선도상의 역이 있는 장소 70곳의 지표면에 그 표식을 놓고 촬영했고 그 일련의 사진도 작품으로 만들었다. 항구, 해안, 거리, 번화가, 총탄에 맞은 건물 앞, 아침의 가자 지구, 밤의 가자 지구... 지하철 표식으로 하나로 연결된 가자 지구의 다양한 표정을 한 다양한 장소의 풍경. (320쪽) 

​ 팔레스타인 문제와 더불어 제3세계 페미니즘 및 현대 아랍문학을 전공한 일본인 연구자 오카 마리의 2018년 저작 『가자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 속에는 팔레스타인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업에 대한 서술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엄혹하기 그지없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이 어떠한 예술적 표현으로 다양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여서였을 것이다. 해당 서술들이 눈에 띌 때마다 나는 절로 숨을 죽이고 집중하게 되었다. 

위 인용문에 언급된 무함마드 아부살의 <가자 지구의 지하철> 연작 프로젝트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주목을 끈다. 가자 지구의 지하철 노선도라니. 가만 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다. 인간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조차 누리기 어려운 고난의 땅 팔레스타인, 그것도 가자 지구에 지하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의 작업에서는 일련의 예술적 허구를 통해 팔레스타인에 지하철이 있다는 거짓 상황을 능청스럽게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그의 예술은 허구를 통해 그렇지 못한 현실의 부당함과 비극성을 역설적으로 배가시킨다. 가자 지구에 지하철이 달리는 날이 오게 된다면! 예술의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 

올 영화제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생전의 서경식 선생과 오랜 기간 우정의 관계를 맺어 온 가마쿠라 히데야 감독의 다큐멘터리 작품 두 편이 출품되었는데 <울려 퍼지는 목소리: 에드워드 사이드로부터>(2003), <가자에 뿌리내리다: 라지 슬라니와의 대화>(2014, 2023)가 그것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 차가 존재하는 두 작품을 하나의 연작으로 긴밀하게 엮어주는 주요 인물은 라지 슬라니라는 인물이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거주하며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14년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 발발 이후 서경식 선생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 방문하게 된다. 여기서 ‘일본’이라는 말은 그러나 얼마간의 복잡함을 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그 장소가 실은 일본 아닌 일본, 일본 안의 외부라 할 오키나와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오키나와를 방문한 라지 슬라니와 서경식 선생 사이에 밀도 높은 대화가 펼쳐진다. 그리고 그 대화의 내밀한 순간들을 가마쿠라 감독 팀의 촬영 카메라가 담는다.

둘 사이의 대담 장소로 간택된 사키마 미술관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이 장소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평양 전쟁 막바지 전세가 기운 일본과 미국 사이에 격렬하고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당시의 오키나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키나와 전투 당시 가족의 피난처였던 구마모토에서 태어난 사키마 미치오 관장이 미군 기지 부지로 빼앗겼던 조상의 땅을 어렵사리 반환받아 1994년 새로이 개관한 장소가 바로 사키마 미술관이다. 이곳의 컬렉션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과 전쟁’, ‘삶과 죽음’, ‘고통과 구원’이다. 그런 만큼 두 사람의 대화를 다른 곳이 아닌 사키마 미술관에서 진행하기로 한 것은 그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서경식 선생 자신의 지극히 의식적인 세팅이었을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영화 상영 후 가진 토크 프로그램 시간 때 가마쿠라 히데야 감독의 입을 통해 직접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술관 안에서도 특별히, 오키나와 전쟁 당시의 참상을 오키나와인의 시각으로 형상화한 거대한 회화 작품 <오키나와 전도(戰圖)>를 바로 앞에 두고 라지 슬라니, 서경식 두 사람의 흥미로운 대담이 펼쳐졌다. 

대담 도중 라지 슬라니가 인상적인 발언을 남긴다. 그림 속에 묘사된 어느 전쟁 희생자의 눈(眼)에 대한 언급이었는데, 그 눈이 어느 순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죽음의 감각이 일상화된 가자 지구에 거주 중인 팔레스타인인 라지 슬라니가,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여파로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 서경식 선생의 초청을 받아, 일본 안의 외부인 오키나와 땅에 넘어와 함께 대담을 나누는 장면을, 일본인 다큐멘터리 감독 가마쿠라 히데야가 회피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긴 영상을 보고 있던 한국인 관객 나는 돌연 말로는 정확히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영화는 오키나와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라지 슬라니의 모습을 비추며 끝이 난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이자 오랫동안 선조의 터전이었던 가자에서 부당하기 그지없게도 사실상 난민의 처지로 내몰려 극한의 (비)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라지 슬라니에게 가자의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 이스라엘은 비단 가자 지구의 땅만 통제해 온 것이 아니다. 가자 지구의 안과 밖 사이를 거대하고도 육중하게 가로막고 있는 이스라엘의 저 악명 높은 분리 장벽이 비록 해안가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고 하여 바다 출입까지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무력은 지중해에 면한 가자의 바다 지역까지도 물샐틈없이 걸쳐져 왔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가장 최근인 지난 2025년 7월 12일에도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다음과 같은 성명을 거침없이 내놓은 바 있다. “가자 지구 해안 지역에 엄격한 보안 조처를 발령한다. 해변, 해상 진입은 전면 금지된다. 수영은 물론 일체의 어로 행위도 금지된다. 가자 지구 전역에서 해변, 해상에 진입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고향인 가자에서는 고작 수영을 하려고 해도 안전,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수해야만 한다.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해 있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떠올라서였을까. 라지 슬라니가 그저 오키나와 바닷물에 몸을 맡기고 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 한 장면이 그 자체만으로 뜻밖의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내내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단조롭기만 하던 라지 슬라니의 얼굴에서도 어느새 긴장이 풀리고 특유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장면으로도 기억된다. 그와 동시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몸짓으로 온전히 자신의 수영을 즐기는 라지 슬라니의 인상적인 모습 위로 가자 지구의 바다 풍경이 나의 머릿속에 슬며시 오버랩되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토크 시간 때 엔딩 씬에서 내가 느꼈던 특별한 감흥에 대해 언급하자 가마쿠라 감독과 나가노 히데요 촬영감독은 흥미로워하며 촬영 당시의 생생한 이야기를 추가로 들려주었다. 이 장면은 실은 사전에 예정되었던 것이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마침 바닷가를 지나게 되었고 딱히 누구의 제안이었다 할 것도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뤄진 작은 일탈이었다는 것이다. 나가노 촬영감독의 손에 때마침 카메라가 들려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순간의 특별한 공기를 카메라맨 특유의 본능적 감각으로 정확히 포착하고 망설임 없이 촬영 버튼을 누를 수 있었던 판단력과 실행력이 돋보였다. 덕분에 이 장면이 남을 수 있었다.

2023년 10월 7일 시작된 가자 전쟁이 햇수로 3년째를 맞이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가자는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비유조차 이제는 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만큼 가자의 현실은 그야말로 참혹하기 그지없다. 모쪼록 가자의 평화를 간절히 바란다. 

가자를 살게 하라. Let GAZA live. 팔레스타인을 자유케 하라. Free Palestine. 
 

​이종찬 

​에세이스트. 문화평론가. 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경계의 사유로부터 촉발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대표 저작으로 「재난, 그리고 절규의 공동체」(문화과학 79호; 2014), 「계란말이가 아니라 닭알구이다」(말과활 7호; 2015), 「디아스포라와 죽음」(릿터 46호; 2024) 등이 있으며 『서경식 다시 읽기』(연립서가; 2022), 『1990년대 문화 키워드 20』(문화다북스; 2017) 등을 함께 썼다. (levert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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